페르시아  성지순례(다니엘,에스더,모르드게) 8일 (IR-02)- 9월 26일 출발  296만원


유네스코 문화유산 페르쉐폴리스-다리우스대왕묘, 파사르가데-고레스왕무덤,
아화즈- 다니엘의 무덤, 느헤미아, 에스라의 수산궁터, 지구라트( Ziggurat )  유적지

하마단- 다리오 왕 아하수에르왕 의 간즈너메(금석문). 하박국, 에스더, 모르드게 무덤 답사
 
방문 도시소개/ 유용한정보 보기   이란역사    메데왕조  고레스왕  Darius I세/마라톤  알렉산더대왕

요일

 장소

교통편

 시간

 주   요   일   정

 제1일

(목) 

인  천

북  경

 

CA126

 

IR801

17:50

19:00

22:40

인천 출발           

북경 도착

북경출발 (석:기내식)

제2일

(금)

테헤란

 

버스

03:25

테헤란 도착 후 호텔로 이동

조식 후 11시 한인교회 방문, 기원전 5000년의 유물에서 이슬람 시대까지 유물이 전시된 국립 고고학박물관, 카펫박물관, 사아드 아바드궁 방문,  서울로 및 서울공원 답사

석식 후 호텔투숙
식사: 조:호텔식 중:현지식 석:특  식

제3일

(토)

테헤란

쉬라즈

 

 

 

 

  

아화즈

IR234

 

 

 

 

 

 IR433

06:15

08:05

 

 

 

 

 20:30

21:45

테헤란 출발

쉬라즈 도착

조식 후 2500년전 페르시아제국의 영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유네스코 지정 인류 문화유산인
페르세폴리스(열방의 문, 아파다나궁전, 다리우스왕의 궁전 등), 페르시아 제국 특유의 암벽 묘(다리우스대왕과 그의   후계자들의묘)인 낙쉐로스탐, 코란게이트,
고레스왕의 무덤인 파사르가데 관광

석식 후 쉬라즈 출발

아화즈 도착 후 호텔투숙
식사: 조:호텔식   중:현지식  석:현지식

제4일

(일)

아화즈

 

 

 

 

이스파한

 

 

 

 

IR332

 

 

 

 

21:05

22:00

조식 후 느헤미야, 에스라, 에스더, 모르드게 시대의 배경이 되는 수산궁터와 다니엘 무덤,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초가잠빌의 지구라트 방문

석식 후 공항으로 이동

아화즈 출발

이스파한 도착 후 호텔투숙

식사: 조:호텔식  중:현지식  석:현지식

제5일

(월)

이스파한

 

 

 

 

 


 

 

 

IR221

 

 

 

 


23:55

조식 후 세계에서 가장 작은 성경과 머리카락에 쓰인 성경구절 등을 볼 수 있는 반크교회,
조로아스터교 사원인 어타쉬 캬데,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이맘 광장 및 이맘모스크, 알리꺼푸 궁전, 체헬쏘툰   궁전, 씨오쎄폴과 폴레허쥬 다리 등 관광.

석식 후 공항으로 이동

이스파한 출발

식사:  조:호텔식  중:특  식  석:현지식

제6일

(화)

테헤란

하마단



버스

00:50

전일

테헤란 도착 후 호텔투숙

조식 후 하마단으로 이동. 고대 페르시아어,엘람어, 바빌론어로 다리오왕이 새긴 글이
아직도 남아있는 비쏘툰 기념비와 다리오왕과 아하수에로 왕의 갼즈너메,
메데왕국의 악메다(헤크마타나)궁터와 유적 및 유물 관광

석식 후 호텔투숙
식사:  조:호텔식   중:현지식   석:현지식

제7일

(수)

하마단

 

 

테헤란

버스

 

 

 

IR800

 

 

 

 

19:25

조식 후 하박국 선지자 무덤 및 성채, 에스더. 모르드게 무덤 관광

하마단 출발

테헤란으로 이동 중 알리사도르 동굴 관광

테헤란 도착 후 공항이동

테헤란 출발
식사:  조:호텔식  중:현지식  석:기내식

제8일

(목)

북 경

 

인 천

 

CA131

06:25

11:05

14:15

북경 도착

북경 출발

인천 도착

조,중식:기내식


*상기 일정은 현지사정에 따라 다소 변동될 수 있습니다.

http://www.chinatravel.co.kr/itn/church/ir-02sjitn-2013.htm
http://www.chinatravel.co.kr/itn/church/iran8d_themasjtr.htm

방문 도시소개/ 유용한정보 보기

테헤란은 카자르왕조시대에 이란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디비드,니아와란,골레스탄 등의 왕궁과 테헤란의 유명한 전통시장이 있고, 레자압바스 미술관, 카펫박물관,등 여러 고적,
고고학적 가치가 높은 사적등 관심을 끌만한 명소가 많이 있습니다

야즈드시는,이란에서 최고 오래된 전형적인 사막도시입니다.
건축조형물이 사막도시 가운데서도 특히 아름다운 도시로서 유명합니다. 근교의 촌락이나 시내에서는 고대로부터 조로아스터교도 들이 거주해오고, 신자들이 많이 생활하고 있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남부의 도시 쉬라즈는, 그 땅이 낳은 시인 하페즈와 함께 에림가-덴등 아름다운 정원으로 잘 알려져있습니다. 아케메니아왕조의 수도 페르소포리스는 북쪽으로 56km거리에 있는 빼어난 관광지의 하나로서
쾌적한 호텔에서의 숙박도 즐길 수 있습니다.

유용한정보
☞ 이란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위도에 위치하며 기후는 연중 우리나라와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 이란의 음식은 주로 다양한 종류의 야채, 닭, 양, 소, 생선, 새우들이 주 재료들입니다.
☞ 이란의 기념품들은 페르시아 유리잔, 페르시아 꽃병, 페르시아 카펫, 금형 등이 있습니다. 

☞ 여성분들은 머리를 가려야 합니다. 여행전에 스카프를 준비해주세요.
☞ 이란에서는 카드사용이 잘 안됩니다. 미리 달러나 유로화를 준비해주세요.

 http://irn.mofat.go.kr/kor/af/irn/main/index.jsp  주이란대사관      이란역사

구분

이란의 역사  년 대

   세부 년대/요약

고대 이란 1 :

선사시대 / 메디아 왕조 (B.C. 708 - B.C.550)         자세희보기 1
메디아인의 중앙 연방제...
메데.아스티아게스 왕  앗시리아 멸망시킴 BC621년....

  BC 750-550 메디아왕국

고대 이란 2 :

Achaemenes 왕조 (B.C. 550-B.C. 330) / 알렉산더 대왕의 침공과 Seleucid 왕조
고레스(키루스 Cyrus )..바빌론에서 그를 따른 유태인 현재에도  이란에 거주함
고레스왕 때 창건수도 파사르가데 (메데, 리디아 (BC550) 바빌론(BC539)이집트정복
다리우스1세 페르세폴리스천도(BC518) 조로아스터교 국교채택.  마라톤(BC490)
Parthia (Arsacid)왕조(B.C.247-A.D. 224)              자세희보기 2  

 BC 550-333 아케메네스 왕조
 BC 333-330 알렉산더 대왕
 BC 312-247 셀레우코스왕조
 BC 247-224 파르티아조

고대 이란 3 :

Sassan 왕조의 페르시아 (224-652)

 사산조 페르시아

중세 이란 1 :

아랍족의 지배   우마이야~압바스 왕조 651~1037

 아랍제국

중세 이란 2 :

셀주크 터어키(1037-1220)
& 몽골의 지배(1220-1335)

  셀주크 투루크 조
  징기스칸& 훌라그 일한국
  티무르 제국

중세 이란 3 :

Safavid 왕조(1501-1722)    이민족 지배 탈피.. 이슬람 시아파 수장 이스마엘 창건

  사파비조 페르시아

 

 

 

이란 근대사 1 :

Qajars왕조 (1795-1925)   테헤란 수도 주요도시 캬샨. 아가캰 이후 왕+샤Shah 부름

 카쟈르 왕조 페르시아-의회

이란 근대사 2 :

팔레비 왕조(1926-1979)

 팔레비족 레자칸 쿠테타

이란 근대사 3 :

이슬람 공화국(1979- )   

 호메이니

http://www.hye-kyung.pe.kr/iran/iran-link.htm   참조...이란 정보링크 사이트/

고대 이란 1 :

선사시대 / 메디아 왕조 (B.C. 708 - B.C.550)      아스티아게스왕

  BC 750-550 메디아왕국

고대 이란 2 :

Achaemenes 왕조 (B.C. 550-B.C. 330) / 알렉산더 대왕의 침공
고레스왕-아케데메스 왕조 창건

 BC 550-333 아케메네스 왕조
 BC 333-330 알렉산더 대왕

가. Achaemenes 왕조 (B.C. 550-B.C. 330):

아스티아게스 왕을 축출한 그의 외손자 키루스(Cyrus-고레스)는 새로 아케메네스 왕조를 열었으나 같은 이란족이었으므로 국명과 지배세력만 바뀌었을 뿐 실제적인 변화는 거의 없었다. Cyrus 대왕은 즉위후 강력한 정벌정책으로 주변의 군소국가를 통합하여 東으로는 소아시아, 아르메니아지역과 서쪽으로는 지금의 힌두쿠시 지방까지 세력을 확장하였으며 B.C. 539년에는 바빌로니아까지 정벌, 한 때 동맹을 맺었던 나보니두스 왕을 폐위시켰다. 그는 새로이 정복한 영토에 지극히 관대한 정책을 펼쳐 그들의 관습과 신앙을 지켜준 까닭에 피압박 민족들로부터 해방자로 추앙받았다. 특히 당시 바빌로니아에 노예로 잡혀 있던 유태인을 해방시켜 그의 이름은 구약 에스라서와 이사야서에 고레스왕으로 기록되기도 하였다. 그가 해방시킨 바빌론의 유태인중 일부는 그를 따라서 이란으로 이주하여 현재 이란에는 약 28,000명의 유태인이 거주하고 있다.

 

키루스왕은 이란족을 처음으로 통합하고 당시 문명세계의 대부분을 정복하였으며 이러한 그의 관용정책으로 인해 현재 이란인은 그를 군사적인 성취를 이룩한 정복군주로서가 아니라 寬容과 叡智를 갖춘 이상적인 통치자로서 존경하고 있다.

키루스 대왕은 이집트 정복을 꿈꾸었으나 이루지 못하고 사망하였고 그의 아들 캄비세스 2세가 遺志를 받들어 이집트를 정벌하고 자신은 이집트 제 27대왕조의 왕이 되었다. 그러나 그가 이집트에 머무는 동안 국내에서는 왕위 찬탈의 혼란(캄비세스 2세가 즉위와 함께 살해한 동생을 사칭하는 자가 정권을 찬탈)이 일어나 국가가 혼동에 빠졌고 그는 자신이 진두지휘한 이디오피아 원정이 실패하자 자살하였다.  

왕위 찬탈사건의 혼란을 수습하고 즉위한 Darius I세는 인도북부에서 지금의 불가리아 남부에까지 영토를 확장, 이란 역사상 가장 방대한 영토를 통치한 군주가 되었다. 그는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운하를 최초로 건설하였으며 그 위치는 지금의 수에즈 운하와 거의 중복된다. 그보다 그는 아테네 전투로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이다. 그의 영토확장에 따라 터어키 서해안에 위치하고 있던 당시의 그리이스 식민도시도 그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상이한 정치제도와 차별적인 조세제도로 자신들의 무역활동과 本國 그리이스와의 교통이 제한을 받게 되자 이들 식민도시는 Miletos시를 중심으로 페르시아에 저항하는 반란을 일으켰으며 아테네가 이를 지원하자 그는 3차에 걸쳐 그리이스를 침공하였다(B.C. 492-480). 기원전 492년의 1차 원정은 폭풍으로 인해 실패하였고 2차 원정(기원전 490)때에는 아테네 북동쪽 마라톤 평원까지 진격하였으나 아테네군에게 대패, 퇴각하였으며 바로 그 전투가 마라톤의 기원이 된 마라톤 전투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마라톤 전투는 헤르도투스가 유럽인의 시각에서 기술한 것으로 크게 과장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페르시아 역사에는 그다지 중요하게 기술되어 있지도 않고 헤르도투스가 주장하는 페르시아 병력 규모도 그리이스보다 휠씬 강성했던 이집트를 원정했을 때의 페르시아 병력보다 많은 점에 비추어 과장되었을 소지가 높다.

 다리우스 1세는 3차 원정 준비중 사망하였고 그의 뒤를 이은 크세르크세스가 3차 원정을 시도하였으나 살라미스 해협에서 아테네 해군에게 궤멸됨으로써 10여년에 걸친 그리이스 遠征은 실패하였고 그의 死後 정복민의 반란과 지배층 분열, 왕권 다툼의 혼란속에 국력이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Achaemenid 왕조의 페르시아 제국은 이전의 메디아 왕국과는 달리 상당한 정도의 중앙집권 체제와 튼튼한 경제 사회체제를 이룩하여 명실상부한 제국의 틀을 갖추었다. 다리우스 1세가 완성한 행정 조직은 중앙집권과 봉건제도가 혼재된 체제로서 즉 全國을 satrapsy(屬州)라고 불리는 20개의 행정구역으로 분할하고 지방행정책임자(太守, satrap)가 이를 상당한 재량권을 갖고 지배하는 형태였다. 그러나 치안과 動員을 담당하는 장군과 행정을 맞는 관리는 중앙정부와의 直報체계를 유지하였으며 帝國 全域은 촘촘한 도로망과 국가가 운영하는 驛馬體制(postal system)으로 연결되어 아무리 奧地라 하더라도 15일 이내에 연결이 가능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가장 긴 도로는 리디아 속주(지금의 터어키 북서해안)의 수도 사르디스에서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 Susa( 현 아와즈 시)를 연결하는 것으로 거리가 2,600km에 달하였다. 이러한 도로망을 이용하여 왕은 자신의 감독자를 각지에 파견, satrap을 견제할 수가 있었다.

 

페르시아 제국의 안정된 지배로 인해 도로망이 건설되고 치안이 유지됨과 더불어 법규가 통일되고 화폐의 공신력이 보장됨으로써 동서를 잇는 교역이 활발히 발달하였으며 페르시아어가 중동지역은 물론 유럽까지 전파, 영어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예컨대 bazzar, shawl, sash, turquoise, orange, lemon, melon, peach, spinach, asparagus 등의 영어는 그 기원이 페르시아어이다.
무역외에는 농업과 주변 속국의 租貢이 국가의 주요 수입원이었으며 지금 시라즈市 인근에 남아 있는
Persepolis離宮에는 조공을 바치는 주변국가 사절단의 모습이 뚜렷한 浮彫로 남아 있다. 조세는 모든 정복지는 왕의 소유라는 개념 아래 피정복민만이 부담하였고 페르시아 本國民은 면제되었다. 상당한 법령체제를 갖고 있어 각 지방별 관습에 따른 지방법과 제국 전역에 적용되는 제국법을 운영하였다. Achaemenid 왕가는 자신의 가족을 주변국가의 지배자와 정략결혼 시키거나 그들의 자식을 수도 Susa에 인질로 잡아두는 방식으로 저항의지를 미리 차단하였으며 이들 인질을 페르시아식으로 교육시켜 귀국후에도 자연히 친 페르시아 성향을 갖게 하였다.

 

나. 알렉산더 대왕의 침공과 Seleucid 왕조의 성립 :    

아케메니드 왕조는 그리이스의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멸망하였으며 그가 정벌중 바빌론에서 후계자 없이 사망하자 그가 정복한 광대한 대지는 4명의 휘하 장군이 나누어 가졌다. 그중 이란지역을 통치하게 된 것은 Seleucus 장군으로서 그들 후손이 이란을 지배했던 시기(B.C. 312-B.C. 247)를 셀루키드(seleucid) 왕조라고 한다.
 

다. Parthia (Arsacid)왕조(B.C.247-A.D. 224):

셀루키드 왕조는 강력한 집권체제를 구축하기도 전에 대소규모의 피정복민 반란에 시달렸다. 이중 Fars 지방(현재의 타지키스탄 지역)의 半유목민인 파르티아족(이란족과 스키타이족의 혼혈)이 Arsaces의 지도하에 강성하기 시작하여 B.C. 247년에 Seleucid 왕조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키고 Parthia 왕조를 성립하였다. 파르티아 왕조는 Mithradates II세 치세(B.C.123-87) 때 흥성하여 인도와 아르메니아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을 통치하여 아케메니드 왕조시의 영광을 재현하였으며 당시 서양을 통일한 로마제국과 수차례 對敵하였다.
 

< B.C. 1세기경의 파르티아 영토 > 역시 동서양을 잇는 교역이 흥성하였으며 이란의 카페트, 말, 단검 등이 동서양에 광범위하게 유포되었다. 지배층은 배화교를 숭배하였으나 일반 대중까지 침투하지는 못하였으며 주변 국가에 비해 신분이동이 가능했던 비교적 개방사회였던 것으로 보인다. 파르티아족의 출신지역인 Parthav 지방의 언어인 Pahlavi가 공용어로 사용되었으며 1979년 회교혁명으로 붕괴된 Pahlavi 왕조는 바로 이 이름을 딴 것이다.
파르티아는 아케메니드 왕조에 못지 않은 제국을 건설하였고
500년 가까이 이를 유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뒤를 이은 사산(Sassan)왕조가 대부분의 유적과 서적들을 조직적으로 파괴했기 때문에 정치조직, 사회, 경제체제, 문화 등의 자세한 내용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가. 선사시대
이란 고원에 농경과 도기제작이 시작된 것은 B.C.6000년경으로 추정되나 현재 이란인의 직접적인 조상인 인도 유럽어족중의 한 갈래가 이란고원으로 이주하여 본격적으로 정착한 것은 B.C. 2,500년경으로 짐작한다. 異說이 있기는 하나 중앙아시아 초원에 살던 아리안인(인도유럽족)이 B.C. 3,000-4,000년 서쪽과 남쪽을 향해 대규모로 이주하기 시작하였으며 서쪽으로 이동한 부족은 유럽대륙에 정착하여 독일인, 슬라브인, 그리이스인, 라틴족 등의 원조가 되었고 남쪽으로 이동한 부족의 하나는 이란 고원에 정착하여 이란인의 기원이 되었다. 남진을 계속한 다른 부족은 인도 북부에 정착하여 先住民인 드라비다族과의 혼혈과정을 거쳐 현재의 인도족이 되었다고 한다.

이란 고원에 정착한 아리안족은 離合集散의 과정을 거쳐 scythian족 (북동부 정착), medes족(중부, 북서부 정착), persian족(남부, 남서부 정착)으로 大分되어 갔으며 이들 이주 아리안족은 초기에는 선주민들의 용병으로 고용되어 당시 중동지역의 强者로 군림하던 수메리아 나 바빌로니아의 거듭되는 침략을 막는 데 투입되었으나 이 과정을 통해 軍力을 장악하여 점차 支配主의 위치를 침탈하고 궁극적으로 이란고원의 지배부족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메디아 왕조 (B.C. 708 - B.C.550)
기원전 7세기경 이란인의 一派인 메디아(Medes)인들이 앗시리아로부터 독립하여 남부 이란과 소아시아에 걸치는 국가를 건설하였다. 이는 이란인이 세운 최초의 왕조로서 중앙아시아의 여러 지역을 지배하기는 하였으나 강력한 중앙집권국가를 이루지는 못하고 다수의 지방세력 (속주)이 혈연관계를 통해 중앙권력과 연계된 형태의 연방체의 한계를 넘지 못하였다.

기원전 621년 메디아 왕국의 아스티아게스 왕은 바빌론과 연합하여 앗시리아를 붕괴시키고 메소포타미아 북부지역을 차지하였으나 이에 만족치 않고 비옥한 초승달 지역(현재의 이라크)마저 장악하기 위해 바빌론과 대적하였다. 바빌론의 나보니두스 왕은 아스티아게스의 외손자이며 지금의 이란 남부 지방을 통치하고 있던 아케메네스 家의 Cyrus(고레스)와 동맹을 맺고 메디아 왕국을 정벌하였다.